순국 106주년 안중근의사.."7발 쏜 뒤 마지막 한발 남긴 뜻은"

대한국인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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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106주년 안중근의사…"7발 쏜 뒤 마지막 한발 남긴 뜻은"

"마지막 탄환, 자결용 아니었다"…어머니 편지도 기록엔 없어
안의사 기념사업회 26일 효창공원서 추모식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안중근은 왜 한 발의 총알을 남겼는가? 7발을 쏜 뒤 안중근은 마지막 한 발에 대해 생각했으리라. 아마도 그 한 발은 자기 자신의 자결을 위해 준비한 탄환이었을 것이다." (한 인터넷 블로그에 실린 글)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이후 권총에 탄환 한 발이 남았다는 사실을 두고 세간에는 흔히 마지막 한 발은 자결용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러나 24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이와 같은 해석은 감동적이지만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외에도 민족의 영웅 안 의사와 관련한 속설 중에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 추측들이 많다.

◇ 안중근 "재판서 이토의 죄악을 하나하나 진술하려 했다"

사업회가 지난해 펴낸 안중근 자료집 중 '안중근 신문기록'을 보면 안 의사는 거사후 일본 경찰에 체포된뒤 미조부치 다카오(溝淵好雄) 검사의 신문에 한결같이 자결할 마음이 없었다고 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 의사는 검사가 "권총 한 발을 남긴 것은 결행한 후 자살할 작정이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묻자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안 의사는 "이토의 목숨을 빼앗으면 나는 법정에 끌려나갈 테고, 그때 이토의 죄악을 하나하나 진술하고 나 자신은 일본 측에 일임할 생각이었다"며 탄환 한 발이 남은 것은 "이토가 이미 쓰러져 더 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재판정에서도 안 의사는 "죽는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는 단지 이토를 죽인 것만으로는 죽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안 의사는 거사 전에 '쥐도적(鼠竊) 이토'라는 표현이 들어간 노래 '장부가'를 지어두고 자신이 조사를 받으면 자연히 이 노래가 신문사로 흘러들어가 보도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체포되고 나서 조사와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연구소의 신운용 책임연구원은 "안 의사는 의거의 목적을 이토 제거보다 재판투쟁에 뒀다"며 "재판을 통해 일제의 한국침략 상황을 세상에 알리려고 이토를 처단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재판 이후 영국 신문 '더 그래픽'은 1910년 4월 16일자 기사에서 "세계적인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으며 그의 입을 통해 이토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고 보도했다.

안중근 의사 [연합뉴스DB]

◇ 어머니 편지도 기록 없어…"독서 못 마쳤으니 사형 늦춰달라" 발언도 허구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국가보훈처 공식 블로그에 게재된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다. 안 의사의 어머니다운 강개가 느껴질 만큼 감동적인 편지이지만, 이 편지 역시 구전되는 것일 뿐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는게 사업회 설명이다.

다만 1910년 당시 대한매일신보에 조 여사가 일본 헌병대에서 "중근이가 이번에 행한 일은 생각한 지 오래된 일이다. 러일전쟁 이후로 밤이나 낮이나 말을 하든 일을 하든 오직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생각 뿐이었다"라고 진술했다는 기록이 있어 조 여사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사형집행일에 안 의사가 독서를 끝마치지 못했다며 5분만 집행을 늦춰달라고 했다는 일화도 여러 책에 인용될 정도로 유명하지만, 실제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사형집행 당시 안 의사는 '동양평화만세' 삼창을 하고자 했으나 거절당하고 대신 천주교도임을 참작해 잠시 기도할 시간을 얻었다는 것이 현재 있는 기록의 전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변호를 거부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퍼졌으나 사실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한제국의 외부 고문이었던 친일파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전명운 의사에 대한 법정 통역을 거부한 바 있는데, 이를 안 의사에 대한 변호와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만주 뤼순(旅順)에서 마차에 실려 형장으로 향하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길 [연합뉴스DB]

◇ "틀린 속설 바로잡으려면 자료집 편찬 중요"…26일 효창공원서 추모식

사업회는 안 의사에 대한 모든 자료를 망라한 '안중근 자료집'을 38권 규모로 편찬하고 있다.

지난해 1차분 11권이 발간됐고 올해 2차분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내후년에는 완간하겠다는 계획이다.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해 사업회가 자체 예산으로 준비해오다 다행히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인쇄비 예산을 지원해 책을 찍을 수 있었고, 올해는 원문해독과 번역 등 사업비 예산도 추가로 지원받았다.

윤원일 안중근평화연구원 부원장은 "안 의사는 잘못된 속설들로 인위적으로 미화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우리가 존경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라며 "감동적인 일화를 자꾸 만들면 역사를 감상적인 수준으로 만들어 자칫 국수주의가 될 우려가 있다"고 경계했다.

윤 부원장은 그런 의미에서 연구자와 대중이 안 의사와 하얼빈 거사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안중근 자료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업회는 안 의사 서거 일인 26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안중근의사 순국 106주년 추모식'을 연다.

효창공원에는 백범 김구 선생 묘역 옆에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안장한 삼의사묘역과 함께 안 의사 유해를 찾았을 때 모셔오기 위해 마련해둔 안 의사의 가묘가 있다.

효창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 가묘 [연합뉴스DB]

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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