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해스님 / 논설위원·서울 개운사 주지

행정안전부와 성북구청이 인촌로를 다시 개운사길로 복원하기로 사실상 확정하고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개운사 주지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개운사 진입로에 ‘인촌로 23길’ 이라는 주소 간판이 나붙은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새주소 시행법에 따라 변경된 주소를 부처님오신날 직전에 구청에서 개운사로 통보해왔다. 주지로서 참으로 황당하고 이대로 확정된다면 불조와 수많은 불자, 항일운동을 했던 선배 스님들 앞에 머리를 들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부끄럽고 분했다.

친일행적 고려안한 ‘인촌로’

1393년 무학대사가 창건한 개운사는 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사찰이다. 조계종의 입장에서 보면 최초의 강원이었고 유일한 승려양성전문 4년제 대학인 중앙승가대학이 있었던 곳이다. 개운사와 부속암자인 대원암 보타사의 문화재만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대표적이다. 1274년이라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수 발원문이 있다. 13세기 제작된 불상이 남아 있는 예는 드물다. 복장 전적 21점도 현재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는 귀중한 자료들로 신라 하대로부터 고려 전기로 판단되고 있다. 화엄경 진본 60권, 정원본 40권 등 3본의 화엄경이 고루 들어있어 서례 화엄경 연구 및 불교사 연구에도 희귀한 자료다. 감로도, 신중도, 팔상도, 지장시왕도, 보타사 금동관음보살좌상과 보타사마애불 등은 시도유형문화재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주민들에게 등대이자 이정표 역할을 해오던 개운사길을 하루아침에 인촌로로 바꿔 버린 것이다. 인촌은 흔히 고려대의 설립자로 알려진 김성수의 호이다. 행정안전부의 새주소 사이트에서 소개하길 “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고려대의 전신)의 설립자”여서 인촌로라고 명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을 왜곡한 것인데다 김성수의 친일행적이 드러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보성전문학교는 이용익이 설립했고, 1932년 김성수가 학교를 인수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김성수는 1935년 경기도청 주도로 도내 사상선도와 사상범의 전향 지도 보호를 목적으로 조직된 친일단체 소도회의 이사에 선임된다. 2년 뒤 경성방송국의 중일전쟁 홍보를 위한 시국강연회 참석과 국방헌금 납부 사실도 밝혀졌다. 1939년 황국신민화를 도모하기 위한 일본 내 조직인 협화회에 참석, 일본에 대한 충성맹세, 1943년 8, 11월 <매일신보>를 통한 친일 글과 담화 발표 등 친일행적이 잇따라 드러났다. 정부에서도 김성수에 대한 서훈 취소를 검토 중이다.

이에 반해 개운사터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만해 한용운스님과 석전 박한영스님들이 주석하며 항일 의지를 불태우던 터전이다. 이런 곳에 버젓이 친일파 오명을 쓰고 있는 김성수의 호를 따 ‘인촌로’로 개명한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현실인식과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브랜드위원회 4차 보고회의에서 전통문화 운운한 것이 빈말이라고 믿는 이유다. 개운사 신도와 주민 2000여 명의 서명과 운암 김성숙선생 기념회를 비롯한 한일운동가단체협의회의 줄기찬 노력으로 개운사길은 복원을 앞두고 있다. 천만다행이다.

모든 잘못된 도로명 되찾아야

문제는 화개사 길을 비롯한 대부분 사찰 명칭의 길 이름이 이번 정부 조치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불교계는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와 견제의 끈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개운사길 복원을 계기로 모든 잘못된 도로명을 되찾아 한다.

해당사찰의 주지 스님은 물론, 불교시민사회단체와 불자가 나서고 종단의 행정이나 재정적인 뒷받침이 절실한 시점이다. 포교나 부처님의 뜻을 전하는 게 경전의 설파나 거대한 사찰의 불사에만 있지 않다.

[불교신문 2728호/ 6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