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언론보도, 오마이뉴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끌다

관리자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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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54] 그는 안중근 의사를 무척 존경하였다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원 안중근의사 묘역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원 안중근의사 묘역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그는 안중근 의사를 무척 존경하였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안 의사의 살신성인정신과 평화사상이었다. 1995년 9월 5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안 의사를 추모하는 기존의 숭모회가 있었지만, 박정희의 '특별 배려'로 조직된 이 단체는 '안중근 정신'과는 격과 결이 다른 사람들이 이끌고 있다고 판단, 새로운 기념사업회를 만든 것이다.


가톨릭 신부가 천주교 순교자들을 놔두고 굳이 안 의사의 기념사업회를 조직한 것은 한국천주교의 전비(前非)를 속죄하는 의미도 깔려 있었다. 선대들의 죄업을 통절하게 반성하면서 안 의사의 정신을 선양하고 바르게 잇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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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선교사들이 사목 행정을 주도했다는 시대적 상황과 한계가 있었지만, 일제치하에서의 교회의 모습이란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배신과 반역 바로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천주교 신자는 살인할 수 없다는 기계적 논리를 내세워 교회 밖으로 쫓아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애정도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반면 일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뮈텔(Mutel) 주교가 이토 히로부미의 영결식에 참석하여 한가운데 놓은 조화와 그 밑에 '천주교회'라 쓰인 글자를 생생히 기억하여 일기에 적었다는 것은 너무나 대조적인 일로서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대일관과 한국관을 알 수 있다(1999. 11. 4. <뮈뗄일기> 참조).


뮈텔 주교는 또한 의병을 도와준 풍수원의 정규하 신부(1863년 출생, 1896. 4. 26. 서품. 1914. 10. 23. 선종)와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까지 치른 윤예원 신부(1886년 출생, 1914. 3. 7. 서품, 1969. 5. 7. 선종)를 문책했으며 서울 용산신학교에서는 3.1운동과 관련하여 여러 신학생을 퇴학시켰고 대구신학교는 자진 휴교하기에 이른 일도 있다. 더구나 교회는 3.1운동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기까지 했다. (주석 9)


기념사업회는 안 의사의 각종 추모사업을 폭넓게 진행하였다. 2002년 중국 대련에서 안 의사 순국 92주기 남북공동행사를 거행하고, '안중근 평화상'을 제정ㆍ시상을 필두로 해마다 학술대회와 추모공연을 빠지지 않았다.

 

안중근의사 기념비
▲  안중근의사 기념비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2004년에는 부설로 안중근연구원을 결성하여 조광 고려대 교수를 소장에 위촉했다. 이후의 주요 사업ㆍ행사를 살펴보면, 안중근 관련 자료집 발간 준비위원회 구성, 의거 100주년 국제학술대회, 시민음악회, 순국 100주년 남북공동행사, 신을사5적 발표, 안 의사 북한유적지 방문, 생가복원 남북관계자 협의, '안중근과 동양평화론' 중국어판 발간, 청년위원회 '청년 안중근' 발족, 문화예술위원회 발족, 한중일 청년 동양평화회의 개최, 세 차례에 걸쳐 <안중근 전집> 27권 발간 등 많은 일을 하였다.


이와 같은 행사와 사업은 그가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인적ㆍ물적 동원이 가능함으로써 이루어진 성과였다.


함세웅은 2012년 11월 13일부터 17일까지 북한을 방문하였다. 조선가톨릭협회 중앙위원장도 맡고 있는 장재언 조선적십자사위원장의 안내로 황해남도 신천군 청계동 안 의사의 생가 터와 인근 청계성당 터 등을 두루 둘러봤다.


그는 "생가 터에서는 다 함께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드렸다. 생가는 물론이고 인근 청계동성당도 복원하자고 제안했더니 북쪽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구한말 안 의사의 어린 시절에 70가구가 모여 살았다"는 청계동 마을은 다 허물어져 벽돌만 남아 있었고, 청계동성당은 6.25 때 폭격으로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다행히 생가와 성당은 1910년대 독일 신부들이 찍어놓은 사진이 있어 복원할 수 있다. 평양 등에 복원을 하면 이름을 안중근성당으로 해도 좋겠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안 의사의 북녘 독립운동 행로를 추적해 답사하고, 현재 6권까지 나온 <안중근 전집>을 북과 공동으로 출간하는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주석 10)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고 함세웅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안 의사 생가 복원 등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생가복원을 계기로 남북관계도 복원되길 기대했었다.



주석

9> <멍에와 십자가>, 170~171쪽.

10> <북한 다녀온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함세웅 이사장>, <한겨레>, 2012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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