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집과 통일각에 대해서 아시나요?
작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선언한 베를린 구상을 시작으로 개선되고 있는 남북관계는 평창올림픽, 우리 측의 특사 파견, 남측 예술단의 평양공연, 어제 판문점 선언으로 한반도는 완연한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두 정상은 올해 안에 종전선언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평화의 꽃의 만개를 약속했다.
어제 남과 북의 모든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준 약속의 중심에는 판문점에 위치한 남측 ‘평화의 집’과 북측 ‘통일각’이 있었다. 실제로 3월 20일에 있었던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위한 남북실무접촉과 29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회담이 통일각에서 열렸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평화의 집은 시설 개선을 위한 리모델링이 이루어졌다. 남북관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평화의 집과 통일각. 이곳은 어떤 곳일까?
# 평화의 집, 통일각. 그 곳의 위치와 내부는?

▲평화의 집과 통일각의 위치.(출처=Google earth)
평화의 집과 통일각은 서로 대칭되는 건물이다. 그렇기에 회담장을 중심으로 평화의 집은 서남쪽으로, 통일각은 서북쪽으로 약 15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두 건물 모두 군사회담을 제외한 민간회담이나 중요한 행사의 준비접촉을 위해 많이 사용되는 등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평화의 집은 1989년 12월에 완공된 넓이 약 3300m
(약 998평)의 3층 건물로 1층은 응접실과 로비실, 2층은 본회담장과 통신실, 대표 대기실, 마지막으로 3층은 연회 등의 목적을 위한 회의실이 위치한다. 한편 평화의 집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지난 4월 6일부터 20일까지 노후화된 시설 개선과 샤워실 설치, 침대 교체, 엘리베이터 설치 등의 리모델링이 진행되었다.
▲한 눈에 바라 본 평화의 집 구조(출처=뉴시스)
▲판문점 평화의 집 자료사진(출처=국제신문)
통일각은 985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으로 건립되었고 넓이는 약 1600m
(연건평460평)의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건축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대리석과 개성에서 채굴된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내부의 구조는 중앙 홀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회담장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대표단이 대기하는 두 개의 방은 회담장과 연결되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2012년 3월 내부 리모델링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 자료사진(출처=뉴시스)
# 평화의 집과 통일각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 제1차~10차(1988~08.19~1990.01.24.)

▲ 제 1차 준비접촉에서 악수하고 있는 양 측 대표 양영식(우), 김령성(좌) (출처=국가기록원)
남북이 평화의 집과 통일각에서 처음 만난 순간은 1988년에서 1990년까지 열린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이었다. 1,3,5,7,9차는 통일각, 2,4,6,8,10차는 평화의 집에서 이루어진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이 이루어진 배경은 1984년 8~9월 서울, 경기, 충청 일대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인한 재난에 대한 북한의 수재물자 지원으로 인한 대화 재개였다. 그리하여 열린 준비접촉에 남측은 채문식(민주정의당) 수석대표를 비롯한 5명, 북측은 전금철(조선노동당)을 비롯한 5명을 대표단으로 하여 본회담 의제문제를 비롯한 회담형식, 대표단 구성, 운영절차 등을 협의하였다. 그러나 남한 측은 남북 간의 다각적인 교류협력문제, 남북불가침선언 문제,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를 주장하였고, 북한 측은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연습 중지문제, 불가침에 관한 공동선언 발표문제, 남북협력과 교류문제를 주장하면서 남북국회회담은 개최도 못한 채 준비접촉은 결렬되었다. 하지만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은 남북이 두 장소에서 수많은 회담을 하는 신호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2. 제 1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준비접촉 제 1차~5
평화의 집과 통일각에 대해서 아시나요?
작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선언한 베를린 구상을 시작으로 개선되고 있는 남북관계는 평창올림픽, 우리 측의 특사 파견, 남측 예술단의 평양공연, 어제 판문점 선언으로 한반도는 완연한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두 정상은 올해 안에 종전선언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평화의 꽃의 만개를 약속했다.
어제 남과 북의 모든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준 약속의 중심에는 판문점에 위치한 남측 ‘평화의 집’과 북측 ‘통일각’이 있었다. 실제로 3월 20일에 있었던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위한 남북실무접촉과 29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회담이 통일각에서 열렸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평화의 집은 시설 개선을 위한 리모델링이 이루어졌다. 남북관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평화의 집과 통일각. 이곳은 어떤 곳일까?
# 평화의 집, 통일각. 그 곳의 위치와 내부는?
▲평화의 집과 통일각의 위치.(출처=Google earth)
평화의 집과 통일각은 서로 대칭되는 건물이다. 그렇기에 회담장을 중심으로 평화의 집은 서남쪽으로, 통일각은 서북쪽으로 약 15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두 건물 모두 군사회담을 제외한 민간회담이나 중요한 행사의 준비접촉을 위해 많이 사용되는 등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평화의 집은 1989년 12월에 완공된 넓이 약 3300m
(약 998평)의 3층 건물로 1층은 응접실과 로비실, 2층은 본회담장과 통신실, 대표 대기실, 마지막으로 3층은 연회 등의 목적을 위한 회의실이 위치한다. 한편 평화의 집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지난 4월 6일부터 20일까지 노후화된 시설 개선과 샤워실 설치, 침대 교체, 엘리베이터 설치 등의 리모델링이 진행되었다.
▲한 눈에 바라 본 평화의 집 구조(출처=뉴시스)
통일각은 985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으로 건립되었고 넓이는 약 1600m
(연건평460평)의 지상 1층, 지하 1층으로 건축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대리석과 개성에서 채굴된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내부의 구조는 중앙 홀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회담장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대표단이 대기하는 두 개의 방은 회담장과 연결되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2012년 3월 내부 리모델링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 평화의 집과 통일각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 제1차~10차(1988~08.19~1990.01.24.)
▲ 제 1차 준비접촉에서 악수하고 있는 양 측 대표 양영식(우), 김령성(좌) (출처=국가기록원)
남북이 평화의 집과 통일각에서 처음 만난 순간은 1988년에서 1990년까지 열린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이었다. 1,3,5,7,9차는 통일각, 2,4,6,8,10차는 평화의 집에서 이루어진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이 이루어진 배경은 1984년 8~9월 서울, 경기, 충청 일대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인한 재난에 대한 북한의 수재물자 지원으로 인한 대화 재개였다. 그리하여 열린 준비접촉에 남측은 채문식(민주정의당) 수석대표를 비롯한 5명, 북측은 전금철(조선노동당)을 비롯한 5명을 대표단으로 하여 본회담 의제문제를 비롯한 회담형식, 대표단 구성, 운영절차 등을 협의하였다. 그러나 남한 측은 남북 간의 다각적인 교류협력문제, 남북불가침선언 문제,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를 주장하였고, 북한 측은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연습 중지문제, 불가침에 관한 공동선언 발표문제, 남북협력과 교류문제를 주장하면서 남북국회회담은 개최도 못한 채 준비접촉은 결렬되었다. 하지만 남북국회회담 준비접촉은 남북이 두 장소에서 수많은 회담을 하는 신호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2. 제 1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준비접촉 제 1차~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