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민족정기의 표상으로 

남북한 모두에서 위인으로 평가 받은 독립투쟁가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의거 직후 의사로 칭송되고 서거 직후부터 위인으로 추앙되어,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인사들에게 영웅이었습니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정신을 바르게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일은 

민족정기 확립을 위해서도, 올바른 국민교육과 민족통일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안중근 의사 활동연보


1879

황해도 해주에서 탄생 (부: 안태훈, 모: 조마리아)


1885

 

안중근 의사 청계동으로 이사


1892

 

조부 안인수 별세, 안중근 정신적 충격을 받음


1894

김아려와 결혼

신천 의려군의 선봉장으로 동학군 진압

이 무렵 김구와 만남


1897 - 1905

부친 안태운 진사 등 가족 33명 천주교 세례

안중근, 토마스라는 세례명 받음

빌렘신부와 함께 선교봉사


1905

러일전쟁을 보고 해외 이주 계획을 추진

상해에서 르곽 신부를 만나 교육사업 등 예국계몽활동에 진력하라는 충고를 듣고 귀국

부 안태훈 사망


1906

 

1899년 뮈텔주교에게 대학설립 건의를 묵살당한 후 삼흥학교, 돈의학교를 운영


1907

석탄회사 삼합의를 만들어 상업활동에 종사

국채보상운동에 참여

군대해산 때 국외로 망명하여 9월 간도에 도착

10월 말경 노령 블라디보스톡에 안착


1908

의병참모중장으로 국내진공작전에 참가

일본인 포로 3명 석방


1909

3월 초 동지 11인과 단지동맹 결성

연추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귀환하여 이토 히로부미의 방문사실을 확인

우덕순과 이토 처단 계획을 계획하고 동행하기로 함

우덕순과 하얼빈으로 출발

우덕순,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 도착

채가구로 우덕순, 조도선과 함께 하행

하얼빈으로 귀환

오전 9시 30분경 이등박문을 처단


1910

일제 재판부, 안중근 사형 선고

빌렘신부와 면회

안응칠역사 탈고

오전 10시 순국


안중근 의사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