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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 가슴 가슴에 安重根義士를 모시자”(이부영 전열린우리당의장)

글쓴이 : 대한국인 날짜 : 2010-04-09 (금) 11:41 조회 : 18551
“겨레 가슴 가슴에 安重根義士를 모시자”
안중근의사 순국100주기 대련·여순추모행사 참관기

올해는 1910년 안중근 의사께서 중국의 여순 감옥에서 일제에게 죽임을 당하신지 100주기가 되는 해다. 3월 26일이 그 날이다. 안중근 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는 북측의 종교인협의회(위원장 장제언)와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남·북 공동추모 방문’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에는 숙소인 대련발해명주호텔 대강당에서 남북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순국 추념미사’가 집전되었으며 같은 장소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실천방향 연구’ 남북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었고 안중근 의사, 이회영 선생, 신채호 선생 등 한·중·미의 항일 운동가들이 수감되었고 처형당한 여순 감옥 그리고 이들을 재판했던 여순 법정을 돌아보았으며 여순 박물관을 탐방하기도 했다.
3월 25일~27일에 걸쳐 3일 동안 진행된 이번 행사에 필자는 25, 26일
이틀 동안만 참석했다. 27일(토)에 양수리 4대강 생명평화 천주교미사에 참
석할 예정이었으므로 이날 아침 일찍 돌아왔다. 아쉽게도 고구려가 수·당과
혈전을 벌이던 당시의 군사요충지 비사성을 방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
틀째 일정을 끝내고 저녁 늦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서해상에서 우리 해
군의 초계함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침몰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걱정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분단이라는 팽팽한 긴장의 칼날 위
를 걸어가야 할까--남북이 안 의사 순국 100주기 추념행사를 치르면서도
겪어야 하는 고통이었다. 장병들이 무사하기만 빌었다.
26일 오전 대련발해명주호텔 강당에서 있었던 남북공동 미사의 강론에서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씀을 했다.
“오늘 우리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남북의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 안중근 의
사의 큰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청년 안중근 도마, 그는 참으로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신뢰한 모범적 신앙인입니다. ··· 프랑스 선교사들의 교
회적 한계와 인간적 편견 그리고 강대국이라는 우월감을 의연하게 뛰어넘어,
철저한 민족애에 기초하여 보편적 신앙을 간직하고 실천한 안 의사는 주교
와 사제를 능가하는 의로운 증거자입니다. ···안중근 의사, 그는 참으로 독립
군의 표상, 의병의 상징입니다.···그는 불의한 침략자를 공동체와 평화의 이
름으로 제거해야한다는 신념과 확신으로 기도하며 이등박문을 척결했습니
다.····안 의사님, 안의사의 유해 대신 저희는 오늘 성체를 모시는 마음으로
안 의사를 우리의 가슴에 모시겠습니다. 남북 8천만 겨레의 가슴이 모두 안
의사의 묘소입니다.“
이번 여정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으로 순국한 여순감
옥 탐방 순서였다. 이곳에서는 안 의사 말고도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과 초기 독립운동의 최고지도자였던 우당 이회영 선생도
수감 생활하다가 옥사했다. 이회영선생의 경우 수감생활 중 대련 수상경찰
서에 불려나갔다가 스스로 목매 자진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말로 옮길 수
없는 악형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순시 당국은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한국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수감·
순국한 성지로 알려지면서 한국의 순례자들이 몰려들자 여순일아감옥구지(旅
順日俄監獄舊址)라는 큼직한 현판까지 걸어놓고 말끔히 단장해 놓았다. 러
시아의 감옥을 일본이 물려받아 악행을 저질렀다는 뜻의 현판이리라. 역시
돈이 되면 무엇이든지 좋아진다는 것을 요즘 중국에 올 때마다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이곳에서 순국했다는 사실을 가장 눈에 띄게 부각
시키고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를 통틀어 일본제국주의의 최고의 국사범이
안중근 의사였으므로 중국당국으로서도 여순 감옥의 안 의사의 교수형터를
가장 중요한 사적지로 지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여순 감옥에
는 동북3성 지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항일전쟁 시기의 중국의 애국자
들의 투쟁과 순국기록들이 수없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우뚝하
고 의연하게 그리고 가장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분이 안중근 의사였다.
남북의 순례자들이 함께 옷깃을 여미면서 한없는 존경과 애정을 보이는
안 의사 -- 이제 우리는 안 의사를 통해서 우리의 원형(原形)을 찾고 있다
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망국을 당했으되 결코 독립의 희망을 버려서
는 안 된다는, 그리하여 독립을 쟁취해가는 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장엄하
게 보여주는, 또한 우리의 독립이 단순히 우리나라의 독립에 그치는 일이 아
니라 동양평화 더 나아가 세계평화의 초석이라는 장대한 미래를 펼쳐 보이
는, 말 그대로 ‘대한인(大韓人)의 원형’을 보게 된다. 더욱이 독립운동이 이
념 갈등으로 찢기기 이전의, 그리고 해방 뒤의 분단과 전쟁을 넘어설 논리와
비전을 한 세기 전에 이미 제기한 ‘우리의 원형’을 안 의사에게서 찾게 되는
것이다.
현대 중국을 이룩한 가장 위대한 인물, 아니 중국인들 속에서 모택동 보다도
더 존경받는 인물로 떠오르고 있는 고 주은래 수상은 “중·조인민의 일본제국
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은 안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평가했다.
안 의사 흉상 좌우에 남북의 행사 주최자인 함세웅 이사장과 장제언 이
사장이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안 의사를 가운데 두고 우리 어린이
들을 앞세우고 약속을 한 셈이었다. 안 의사와 신채호 이회영 선생들을 만
난 뒤 심장이 뛰는 것을 보니 필자도 아직 늙지 않은 것 같다.

중국 박물관의 ‘동북공정’
여순 감옥의 감격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여순 박물관을
찾았다. 이 박물관은 일제가 1917년 약 25,000평 부지에 건설했다.
중국내외의 고급예술품 약 5만 여점을 전시하고 있는데 청동기 철기
조각 서예 고대화폐 불교문물 등 역사문화재가 망라되어 있었다. 비
전문가인 필자의 눈에도 북방의 사막 지대에서 발굴된 북방인 미이라
등 한화(漢華)와는 관계가 먼 고대 중세의 유물들이 많았다. 이날 필
자의 눈에 들어온 도면 ‘중국-조선 시대구분도’는 중국 당국의 ‘동북공
정’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인과 북한인 관람객들의 방
문이 비교적 잦은 이곳에 의도적으로 이 도면을 내걸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고대 시대 구분에 고조선 부여 옥저 예 등은 아예 없었고 고
구려와 발해는 중국사에 편입되어 있었으며 우리 고대사의 첫 등장 주
역은 마한-진한-변한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왕조는 신라-고려-조선
이었다. 일제가 이 박물관의 이름을 ‘관동청(關東廳) 박물관’이라고 부
른 것은 나름의 의도를 가진 듯하다. 청나라가 망하기 전까지 전통적
인 중국의 동북 국경은 북경 바로 동북의 산해관(山海關) 이남이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내를 건너니 큰 강이 나오고 고개를 넘으니 큰 재가 앞을 가로 막
는 격이라고 할까. 전쟁과 분단의 고개를 넘는 듯하니 큰 산이 앞을
가리는 듯하다. 이제 진정으로 ‘대한인의 기상’으로 이 큰 산을 넘어
야 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을 설친 채 일행과 헤어져 27일 새벽 홀로
공항으로 향하는 발길이 무거웠다. 이념대결, 지역대결이 어지러운 분
단된 내 나라는 한 시간 비행거리에 있었다. 애처러운 젊은 수병들이
가라앉은 군함 안에 갇혀 아우성치고 있는데..... 새로운 중화민족주의
의 열풍이 봄철 황사구름처럼 밀려오는 것을 애써 모른 채 하면서.
2010/4/3 이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