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신부, 강제이주 고려인들의 길 걷는다

대한국인
201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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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강제이주 고려인들의 길 걷는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7년 03월 15일 수요일 제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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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는 40이라는 숫자를 중시한다. 노아의 홍수 때 40일간 비가 내렸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거친 광야에서 생활했으며, 예수는 광야에서 40일간 마귀의 시험을 받기도 했다. 40은 고난을 상징하면서도 완결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80은 ‘더 큰 완결’이다. “외국에서는 훌륭한 분의 장례를 40일간 치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80일간 치르기도 한다.” 함세웅 신부(75)의 설명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어른인 그가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에 의기투합하며 ‘80’에 주목한 이유다. 

국제한민족재단(상임의장 이창주)이 주관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회상열차’에 탑승을 요청받았을 때 함 신부는 머뭇거렸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 여정이 만만치 않아서다. 올해 80주년 행사는 오는 7월23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13박14일에 걸쳐 6500㎞를 이동하는 여정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한촌 기념탑 재건식, 강제이주 시발점인 라즈돌노예 역에서 진혼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이르쿠츠크·바이칼·노보시비르스크 등을 거쳐 최초 기착지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진혼제 및 위령비 제막식, 알마티에서 홍범도 장군 추모제 및 예술제와 제18회 국제한민족포럼 행사 등 강행군 일정이다. 국내 인사 80여 명이 회상열차를 타고 그 수난의 발자취를 되짚어간다.

ⓒ시사IN 신선영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 간도와 연해주를 여러 차례 방문했던 함 신부는 이 여정이 성서에서 부활의 의미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함 신부는 “성서에서 구원은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 체험과 하느님에게 진 빚에 대한 대속(代贖)이라는 의미가 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 자체가 대신 빚을 갚는 행업이었다. 우리 역사에서는 이름 없이 숨져간 순국선열들과 80년 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되었던 그분들이야말로 우리에게 밝음을 준 역사적 시원이자 우리 민족의 부활을 위한 십자가였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끌며 걷던 그 길을 순교자의 길이라 부른다. 그곳을 걷는 것을 순례라고 한다. 순국선열의 길을 따라가는 것도 그에게는 마찬가지로 순례길이다. 함 신부는 “80년 전의 그 여정 역시 순교자의 길이자 정화의 길, 고통에 참여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그 길을 거쳐야 부활과 새로운 생명과 영광이 있다. 그 길을 통해 그분들의 후손과 만나고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지향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삶을 되새기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촛불 평화혁명’의 정신에 부합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함 신부는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을 주도하고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어 1976년 명동 3·1 민주구국선언, 1979년 부마항쟁 등으로 두 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젊은 시절인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로마 유학을 다녀왔고 동물이나 숫자의 상징성에 천착하는 신학적 상징주의 연구에 조예가 깊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의 의미도 그는 숫자를 통해 접근하고 해석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1차 사과문을 발표한 작년 10월25일,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순국선열의 덕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다음 날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를 쏜 10월26일인데, 이날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다. 즉 박근혜의 항복과 박정희의 죽음처럼 우리 민족이 고난에서 부활한 날들이 모두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과 겹쳐 있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와 박정희는 역사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는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겸 ‘10·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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