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는 본디 국가 폭력과 밀접했다. 이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혁명기에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산악파가
공안위원회를 중심으로 '공포(=테러)정치'를 실천한 뒤다. 오늘날 테러는 정치적·군사적 약자가 대의(大義)를 위해 행사하는 폭력을 주로 가리킨다.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이즈음 테러 주체는 대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고 그 대상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정부기관이나 시민들이다. 2001년 9·11 사건이 바로 이 맥락의 대표적 테러다. 그런 테러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고, 그 주모자 빈라덴이 숨어 살던 아프가니스탄만이 아니라 그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라크도 그 몇 백배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모든 테러는 악(惡)인가? 테러라는 말이 부정적 뜻빛깔을 지닌 터라, 테러의 주체, 곧 테러리스트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면, 한국인은 큰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안중근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자유의 투사? 맞다. 안중근은 자유의 투사였다. 그런 한편, 그는 민족의 자유를 위해 테러라는 수단을 사용한 테러리스트이기도 했다.
"한쪽의 테러리스트는 다른 쪽의 자유 투사"라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말의 부정적 함축을 전제한다. 그러나 '테러'나 '테러리스트'라는 말 자체를 가치중립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알베르 카뮈는 한 희곡에서 제정 러시아의 폭정에 반대해 차르 정권의 '인간 도살자'를 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을 '정의로운 사람들'이라 불렀다. 테러리스트는 돈을 목적으로 삼는 '킬러'나 '히트맨'이 아니다. 직업적 '킬러'는 목돈을 벌려고 사람을 죽이지만, '테러리스트'는 민족이나 민중의 해방 또는 어떤 이념의 실현에 헌신하려고 사람을 죽인다.
지폐에서 안중근 초상을 보고 싶다물론 대의의 실현이 목적이라고 해서 모든 테러가 용납될 수는 없다. 예컨대 9·11 사건처럼 일반 시민들을 무차별로 살해하는 테러는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경계 긋기의 어려움이 작용한다. 미국의 군사주의·제국주의 정책은 미국 시민의 동의와 묵인 속에 이뤄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전쟁 행위, 곧 군사적 침략이야말로 가장 잔혹하고 거대한 테러다.
안중근의 테러는 대상이 명확했다. 일부 논자들은 이토가 조선 침략과 합방 문제에서 온건파였다며 그를 죽인 것이 슬기롭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이토가 살해되지 않았다 해서 일본이 조선 합방을 포기했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안중근은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책을 구상하던 지식인 테러리스트였다. 그가 이토에게 행한 테러는 평화주의·반식민주의라는 보편적 대의 차원에서도 정당한 것이었고, 특히 당시 조선인 처지에서 보면 더욱 정당한 것이었다.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든 '자유의 투사'라 부르든, 그는 카뮈 희곡의 주인공들처럼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혹시라도 10만원짜리 지폐가 나온다면, 나는 그의 초상이 거기 새겨지길 바란다. 이 나라 화폐는 온통 이씨 가문 사람들(
신사임당을 포함해서)로 채워져 있다. 우리 처지에선 침략의 원흉일 뿐인 이토 히로부미도 한때 엔화 지폐에 제 초상을 들이밀었다는데,
안중근 의사의 초상을 원화 지폐에 못 넣을 이유가 뭔가?
고종석 (저널리스트) /
테러리스트’ 안중근을 위하여
시사INLive|고종석|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날치기로 비준하는 동안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한나라당과 어용 언론은 신바람이 나서 그에게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였다. 최루탄 하나로 한·미 FTA 비준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김 의원 자신도 생각하지 않았을 테다. 그렇다면 아무런 실익이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민주노동당(이젠 통합진보당)에 '과격' 이미지를 들러붙게 한 김 의원의 행동은 어리석었다. 그는 선을 넘었다. 그런데 그가 국회에서 벌인 일이 과연 테러인가? 그 최루탄 때문에 눈물을 흘린 국회의원은 있었겠지만, 다치거나 죽은 의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만약에 그 행위가 테러라면, 밤길을 걷던 여자가 골목에서 마주친 치한에게 따귀 한 대를 올려붙인 것도 테러일 것이다. 실상, 영하의 날씨에 시민에게 마구 물대포를 쏜 경찰의 행위야말로 테러에 가까웠다.
그런데 모든 테러는 악(惡)인가? 테러라는 말이 부정적 뜻빛깔을 지닌 터라, 테러의 주체, 곧 테러리스트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컨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면, 한국인은 큰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안중근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자유의 투사? 맞다. 안중근은 자유의 투사였다. 그런 한편, 그는 민족의 자유를 위해 테러라는 수단을 사용한 테러리스트이기도 했다.
"한쪽의 테러리스트는 다른 쪽의 자유 투사"라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말의 부정적 함축을 전제한다. 그러나 '테러'나 '테러리스트'라는 말 자체를 가치중립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알베르 카뮈는 한 희곡에서 제정 러시아의 폭정에 반대해 차르 정권의 '인간 도살자'를 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을 '정의로운 사람들'이라 불렀다. 테러리스트는 돈을 목적으로 삼는 '킬러'나 '히트맨'이 아니다. 직업적 '킬러'는 목돈을 벌려고 사람을 죽이지만, '테러리스트'는 민족이나 민중의 해방 또는 어떤 이념의 실현에 헌신하려고 사람을 죽인다.
지폐에서 안중근 초상을 보고 싶다
물론 대의의 실현이 목적이라고 해서 모든 테러가 용납될 수는 없다. 예컨대 9·11 사건처럼 일반 시민들을 무차별로 살해하는 테러는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경계 긋기의 어려움이 작용한다. 미국의 군사주의·제국주의 정책은 미국 시민의 동의와 묵인 속에 이뤄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전쟁 행위, 곧 군사적 침략이야말로 가장 잔혹하고 거대한 테러다.
안중근의 테러는 대상이 명확했다. 일부 논자들은 이토가 조선 침략과 합방 문제에서 온건파였다며 그를 죽인 것이 슬기롭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이토가 살해되지 않았다 해서 일본이 조선 합방을 포기했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안중근은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책을 구상하던 지식인 테러리스트였다. 그가 이토에게 행한 테러는 평화주의·반식민주의라는 보편적 대의 차원에서도 정당한 것이었고, 특히 당시 조선인 처지에서 보면 더욱 정당한 것이었다.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든 '자유의 투사'라 부르든, 그는 카뮈 희곡의 주인공들처럼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혹시라도 10만원짜리 지폐가 나온다면, 나는 그의 초상이 거기 새겨지길 바란다. 이 나라 화폐는 온통 이씨 가문 사람들(신사임당을 포함해서)로 채워져 있다. 우리 처지에선 침략의 원흉일 뿐인 이토 히로부미도 한때 엔화 지폐에 제 초상을 들이밀었다는데, 안중근 의사의 초상을 원화 지폐에 못 넣을 이유가 뭔가?
고종석 (저널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