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단 4기) 역사의 거울에 비친 친일의 민낯

청년안중근
2020-03-20
조회수 859

  바야흐로 통일을 앞두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는 한편, 과거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친일청산의 숙제는 미루어졌다.

  현재를 살아가더라도 여전히 지난 역사는 현존한다. 역사는 시대를 뛰어넘어 현세에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나라에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는 부끄러운 친일의 역사를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친일청산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급급하기보다 차분하게 이러한 친일 문제가 왜 일어났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여기 또 다른 역사적 난세를 맞았던 나라인 고려가 있다. 잦은 외세의 침입과 간섭을 받았던 고려는 그 모습이 일제강점기와 비슷하다. 고려라는 역사의 거울 앞에서 친일파는 얼마나 닮았고, 어떻게 다른가. 이 마주 보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불의의 양상, 난세를 이용해 부귀영화를 누린 그들

  고려는 원이라는 다른 나라의 정치간섭을 받았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와 유사하다. 비록 그 간섭의 정도는 다르지만, 원은 고려의 땅과 재산, 노비를 빼앗고, 평민과 귀족을 가리지 않고 온 백성에게 몽골식 생활 풍습을 강요했다. 왕자들은 원나라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원나라에 대한 세뇌 교육을 받았다.

  비슷한 배경의 역사 속 양상들은 그 내부 정치마저 거울에 비추듯 닮아 있다. 외세의 괴롭힘 속에 두 나라에는 모두 난세를 이용해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친일이 있다면, 고려에는 권문세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백성을 지키기보다 원의 편에서 백성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원나라 옷을 입고, 이름도 원나라식으로 바꿨다. 또한, 권문세족은 백성들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재산을 불렸는데, 이 과정에서 평민들은 노비로 전락하고 빼앗긴 땅에서 노동력마저 착취당해야 했다. 이는 일제의 식민문화통치에 앞장섰던 친일파들의 행적과 유사하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우리 백성들도 가난하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기한부 신고제라는 일제의 술수에 땅을 빼앗겼음은 물론이요, 친일지주 아래 강제적인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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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공녀로 바친 슬픔으로 죽음을 맞은 왕족 부인의 묘지명 (국립중앙박물관 촬영: 공도영,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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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순이 대전읍 일대의 가옥 대자료(垈地料)를 5배 인상하여 200여 가구의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사 (동아일보 1932.6.4)




권문세족과 친일파의 다른 말로

  그러나 이 둘의 말로는 사뭇 다르다. 당시 신진사대부와 정도전은 힘을 합쳐 권문세족의 시대를 끝장냈다.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정도전과 이성계는 이윽고 추진한 전제 개혁으로 권문세족이 백성들로부터 탈취한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렸다. 나아가 조선 초에는 대대적인 숙청을 통해 세력을 소멸시켰다. 그렇게 악행을 저지른 대가로 권문세족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

  반면 친일파는 한 명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다. 미군정 시기에 반공주의 친일파들은 한국전쟁에 참여하면서 전쟁의 영웅이 되고, 친일의 증거 또한 소실되었다. 이후 반민특위를 세워 친일파들을 처벌하고자 했지만, 친일 경찰 세력의 집요한 방해 공작으로 무산되고 결국 친일청산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

  숱한 위기를 이겨내고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그 길에서 민족의 목숨을 중시하며 싸우다 목숨을 잃은 자들이 있다면, 불의를 저지른 자들의 악행도 있다. 역사는 이렇게 유사한 모습을 보이며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의 악행을 친일파보다 더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700여 년 전 고려 역사는 사료도 부족하고 정보도 부족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번 더 주목해야 한다. 권문세족이 단지 기술적인 한계로 상세히 기록되지 못한 것이라면, 불과 70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우리는 어째서 친일파를 기록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친일파들의 행적을 지금부터 기록하고, 이를 기억하고 처벌하지 않는다면 친일파 또한 단 한 줄의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아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이 의도적으로 친일을 했다는 사실도 사라지고 면죄부만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700년이 흐른다면 고려의 역사가 세월 속에 망각되었듯 자연스레 친일청산도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는 미래가 올 것이다.

 

 


<안중근청년기자단 공도영, 김연정 기자>

 

 

작성일 : 2018. 11. 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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