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미스터 션샤인,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 항일 의병들의 뜨거운 투쟁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tvN)이 18.1%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미스터 션샤인’(이하 미션)은 구국을 위해 희생한 의병들을 중심으로 한 서사로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주인공 고애신(김태리)이 소속된 의병들은 자신을 미끼로 내던져 동료와 나라를 구한다. 일반 민중들은 대장장이 일을 하다가, 빵을 굽다가, 인력거를 끌다가 일본의 만행에 격분하여 의병에 합류하고 총을 든다.
시청자 확보를 중시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미션 속 의병활동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➀ 극 중에서 조선 최고 명문가 집안의 일원이자 고종의 스승인 고사홍(이호재)은 구국을 위해 하층민으로 구성된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➁ 그리고 고애신이 소속된 의병단은 일제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발각되지 않았으며 계획한 임무를 완수했다. 또한, ➂ 의병단은 일제가 갖고 있는 무기의 수준엔 미흡하지만 다량의 무기를 확보했다. 하지만 실제 의병들의 현실은 더욱 어두웠다.
▲고사홍(이호재)이 의병들에게 신분 차이를 초월하고 자신의 뜻을 전하는 장면. (미션 16화中)
▲의병단들의 기지. (미션 23화 中)
▲의병들이 무기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 장면. (미션 24화 中)
드라마 ‘미션’에서 드러나지 못한 의병의 한계점
의병은 전문적인 군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전히 전근대적인 편성 방법에 의존했다. 무기나 군복은 일부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불완전했다. 무기는 직접 생산하거나 기존의 총을 개조하는 수준이었고, 제복의 경우 민용호의 의진이 강릉에서 원산으로 진격했을 때 외에는 특별히 제작된 경우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전통 유생이나 양반의 행색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산중에서 노숙하며 힘든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의병은 무기와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일부 성과를 거두었다. 1907년부터 1910년까지 노령 의병이 두만강을 도하해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하였고, 국내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미션에는 의병의 현실과 성과 뿐만 아니라 의병의 한계점들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극 중에선 고사홍(이호재)이 구국을 위해 자신과 신분 차이가 나는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드라마 속 의병들은 큰 희생 없이 여러 작전들을 성공시킨다. 하지만 을사의병에 관한 한국민족 문화대백과 사전의 기록과 박은식의 『한국 독립운동 지혈사』를참고했을 때, 드라마 속의 내용과 의병의 현실 사이에서 일종의 괴리가 확인된다. .
“평민 의병장 김백선이 요청한 원군이 오지 않아 점령에 실패하고 끝내 패퇴하게 되자, 양반 신분의 중군장 안승우 에게 거세게 항의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군기를 문란하게 하였다는 김백선이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
위 기록과 같이 양반, 평민 의병장 간 신분 간 갈등이 존재했다. 또 박은식의 『한국 독립운동 지혈사』를 살펴보면 “무장한 의병으로 피살된 자가 10여만 명이었고, 무고한 촌민으로 학살당한 자는 독립된 이후가 아니면 그 통계를 구비할 수도 없을 것이다.” 는 내용이 있다. 드라마와 달리 의병의 피해가 막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미션의 일부 장면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애국계몽운동가들이 배제된 상태로 연출되었다. 본 논의에선, 미션의 장면 중 언급되지 않았던 애국계몽운동가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정교분리를 극복하고 구국에 투신한 전덕기 목사
미션 22화 중 헤이그 특사 파견과 안창호의 등장 장면이 있었다. 역사에서 헤이그 특사와 안창호와 직접 관계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애국계몽운동가인 전덕기 목사이다.
전덕기 목사는 1896년 독립협회 활동 중, 구국과 개혁 논리가 기독교의 복음과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상동교회에 입교했다.
1902년 상동교회를 맡게 된 전덕기 목사는, 그곳을 독립운동 비밀기지로 활용했다. 1907년 그는 이준 열사와 상동교회에서 헤이그 특사 파견 계획을 수립했다. 안창호가 신민회를 결성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전덕기 목사가 상동교회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덕기 목사는 신민회와 같이 상동교회의 청년학원을 통해 민족·역사 교육을 실행했다.
전덕기 목사는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었고, 보석으로 석방된 이후 1914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정교분리를 주장한 선교사들과 종교인들과 다르게, 조국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전덕기 목사, 그는 진정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애국계몽운동가였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나라를 치료하는 의사가 된 김필순
미션 22화 중, 간호사가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곧바로 약과 붕대를 챙기고 병원을 떠난다. 이것은 이야기 속 설정에 불과하지만, 이 장면은 독립운동가 김필순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는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로,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주치의로 활약했다. 의학전문학교 재학 중에는 상동교회에서 구국운동을 펼쳤고, 이후 의사가 된 그는 자신의 집을 독립운동가들의 회의 장소로 제공했다. 그러나 105인 사건으로 인해 국내 활동이 어려워지자 그는 만주로 망명해 병원을 설립한다. 병원 수익금 대부분을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후원하며, 부상당한 독립군들을 치료했다.
이처럼 ‘미스터 선샤인’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조명 받지 못한 인물들을 비추며 주목한다. 일제의 만행을 참지 못하여, 누군가는 총과 칼을, 누군가는 약과 붕대를 챙겼다.
역사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가
“굿바이 미스터 션샤인,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 항일 의병들의 뜨거운 투쟁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tvN)이 18.1%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미스터 션샤인’(이하 미션)은 구국을 위해 희생한 의병들을 중심으로 한 서사로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주인공 고애신(김태리)이 소속된 의병들은 자신을 미끼로 내던져 동료와 나라를 구한다. 일반 민중들은 대장장이 일을 하다가, 빵을 굽다가, 인력거를 끌다가 일본의 만행에 격분하여 의병에 합류하고 총을 든다.
시청자 확보를 중시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미션 속 의병활동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➀ 극 중에서 조선 최고 명문가 집안의 일원이자 고종의 스승인 고사홍(이호재)은 구국을 위해 하층민으로 구성된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➁ 그리고 고애신이 소속된 의병단은 일제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발각되지 않았으며 계획한 임무를 완수했다. 또한, ➂ 의병단은 일제가 갖고 있는 무기의 수준엔 미흡하지만 다량의 무기를 확보했다. 하지만 실제 의병들의 현실은 더욱 어두웠다.
▲고사홍(이호재)이 의병들에게 신분 차이를 초월하고 자신의 뜻을 전하는 장면. (미션 16화中)
▲의병단들의 기지. (미션 23화 中)
▲의병들이 무기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 장면. (미션 24화 中)
드라마 ‘미션’에서 드러나지 못한 의병의 한계점
의병은 전문적인 군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전히 전근대적인 편성 방법에 의존했다. 무기나 군복은 일부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불완전했다. 무기는 직접 생산하거나 기존의 총을 개조하는 수준이었고, 제복의 경우 민용호의 의진이 강릉에서 원산으로 진격했을 때 외에는 특별히 제작된 경우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전통 유생이나 양반의 행색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산중에서 노숙하며 힘든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의병은 무기와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일부 성과를 거두었다. 1907년부터 1910년까지 노령 의병이 두만강을 도하해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하였고, 국내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미션에는 의병의 현실과 성과 뿐만 아니라 의병의 한계점들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극 중에선 고사홍(이호재)이 구국을 위해 자신과 신분 차이가 나는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드라마 속 의병들은 큰 희생 없이 여러 작전들을 성공시킨다. 하지만 을사의병에 관한 한국민족 문화대백과 사전의 기록과 박은식의 『한국 독립운동 지혈사』를참고했을 때, 드라마 속의 내용과 의병의 현실 사이에서 일종의 괴리가 확인된다. .
“평민 의병장 김백선이 요청한 원군이 오지 않아 점령에 실패하고 끝내 패퇴하게 되자, 양반 신분의 중군장 안승우 에게 거세게 항의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군기를 문란하게 하였다는 김백선이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
위 기록과 같이 양반, 평민 의병장 간 신분 간 갈등이 존재했다. 또 박은식의 『한국 독립운동 지혈사』를 살펴보면 “무장한 의병으로 피살된 자가 10여만 명이었고, 무고한 촌민으로 학살당한 자는 독립된 이후가 아니면 그 통계를 구비할 수도 없을 것이다.” 는 내용이 있다. 드라마와 달리 의병의 피해가 막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미션의 일부 장면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애국계몽운동가들이 배제된 상태로 연출되었다. 본 논의에선, 미션의 장면 중 언급되지 않았던 애국계몽운동가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정교분리를 극복하고 구국에 투신한 전덕기 목사
미션 22화 중 헤이그 특사 파견과 안창호의 등장 장면이 있었다. 역사에서 헤이그 특사와 안창호와 직접 관계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애국계몽운동가인 전덕기 목사이다.
전덕기 목사는 1896년 독립협회 활동 중, 구국과 개혁 논리가 기독교의 복음과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상동교회에 입교했다.
1902년 상동교회를 맡게 된 전덕기 목사는, 그곳을 독립운동 비밀기지로 활용했다. 1907년 그는 이준 열사와 상동교회에서 헤이그 특사 파견 계획을 수립했다. 안창호가 신민회를 결성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전덕기 목사가 상동교회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덕기 목사는 신민회와 같이 상동교회의 청년학원을 통해 민족·역사 교육을 실행했다.
전덕기 목사는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었고, 보석으로 석방된 이후 1914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정교분리를 주장한 선교사들과 종교인들과 다르게, 조국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전덕기 목사, 그는 진정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애국계몽운동가였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나라를 치료하는 의사가 된 김필순
미션 22화 중, 간호사가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곧바로 약과 붕대를 챙기고 병원을 떠난다. 이것은 이야기 속 설정에 불과하지만, 이 장면은 독립운동가 김필순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는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로,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주치의로 활약했다. 의학전문학교 재학 중에는 상동교회에서 구국운동을 펼쳤고, 이후 의사가 된 그는 자신의 집을 독립운동가들의 회의 장소로 제공했다. 그러나 105인 사건으로 인해 국내 활동이 어려워지자 그는 만주로 망명해 병원을 설립한다. 병원 수익금 대부분을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후원하며, 부상당한 독립군들을 치료했다.
이처럼 ‘미스터 선샤인’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조명 받지 못한 인물들을 비추며 주목한다. 일제의 만행을 참지 못하여, 누군가는 총과 칼을, 누군가는 약과 붕대를 챙겼다.
역사 드라마는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