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이념 다툼으로 둘로 갈라져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남한은 군사독재정권이 군림했고 민주주의는 무너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민중은 포기하지 않고 저항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을 위해, 독재 정권의 억압을 받을 때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학생들이 있었다. 3.1 운동을 확산시켰고 4.19 혁명을 주도했고 6월 민주 항쟁을 이끌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해냈다. 그렇게 학생들은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주체가 되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11월 3일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제정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왜 11월 3일로 정해졌을까?
11월 3일이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 이유는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본인 학생이 조선인 학생을 칼로 찔러 부상을 입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반발하여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중심이 되어 광주 지역 학생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광주 시내를 돌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학생 뿐 아니라 민족 각 계층의 지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주동자로 지목된 이들과 가담한 이들은 퇴학과 무기정학처분을 받는 등 탄압을 받았지만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항일운동을 지속했다. 그리고 6·10 만세 운동 이후 침체된 항일독립운동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학생의 힘으로 꺼져가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린 것이다.
▲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학생들의 시위 장면
그리고 정부는 1953년, 당시 학생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학생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한다. 그러나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종신집권을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0월 유신을 선포한다. 그 과정에서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으로 인한 학생들의 정부에 대한 저항이 거세졌고 1973년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 개정을 통해 ‘학생의 날’을 비롯한 각종 기념일을 통폐합한다. 그러나 정부는 1984년 학생의 날을 부활시켰고, 2006년, 학생들의 자율역량과 애국심을 함양하고자 명칭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변경하고 법정기념일로 제정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소외받는 기념일
이렇게 제정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강변역 동서울터미널과 2호선 건대입구역 주변, 온라인 등에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아십니까?”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론적으로 ‘학생의 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있었다. ‘모른다’라는 답변이 총 177명 중 151명으로 약 85%였으며, ‘들어는 봤다’와 ‘잘 알고 있다’는 답변은 각각 17명(9%), 9명(5%)였다. 학생의 날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도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의 배경을 아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알더라도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제정의 취지와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잊혀진 기념일인 것처럼 보였다.
▲ 2호선 건대입구역 주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 학생들이 기억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전국 각지의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기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마다 충남 아산시의 온양용화고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교문맞이 행사를 진행하며. 세종시의 소담고등학교에서는 융합행사를 진행한다. 그 중에서도 의정부시의 광동고등학교에서 수년간 해오고 있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 프로그램은 조금 특별하다. 우선 프로그램의 주체가 학생이다. 프로그램의 기획과 홍보, 진행이 모두 학생회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심지어 상품 구입 같은 부분도 학생회 예산에서 처리한다. 그리고 지난 5일, 광동고등학교 학생회장 김민재 군을 만나 ‘학생독립운동기념일’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광동고등학교의 학생독립운동기념일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는 학생회장 김민재 군
▶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알리기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을뿐더러, 알아도 이름만 알고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모습을 보고 역사적으로 학생들이 알아야 할 날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학생회 주도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들었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요?
“우선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 11월 3일의 일주일 전부터 플랜카드를 걸고 교문 앞에서 학생회가 구호를 외치며 홍보했습니다. 그리고 당일에는 교내 곳곳에 숨긴 쪽지 안의 내용에 대한 정답을 맞히거나, 학생회 학생들이 교내를 돌아다니면서 반을 대상으로 퀴즈를 내서 정답을 맞히면 상품을 수여하기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의 제정 배경과 취지, 그리고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이념 다툼으로 둘로 갈라져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남한은 군사독재정권이 군림했고 민주주의는 무너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민중은 포기하지 않고 저항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을 위해, 독재 정권의 억압을 받을 때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학생들이 있었다. 3.1 운동을 확산시켰고 4.19 혁명을 주도했고 6월 민주 항쟁을 이끌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해냈다. 그렇게 학생들은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주체가 되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11월 3일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제정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왜 11월 3일로 정해졌을까?
11월 3일이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 이유는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본인 학생이 조선인 학생을 칼로 찔러 부상을 입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반발하여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이 중심이 되어 광주 지역 학생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광주 시내를 돌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학생 뿐 아니라 민족 각 계층의 지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주동자로 지목된 이들과 가담한 이들은 퇴학과 무기정학처분을 받는 등 탄압을 받았지만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항일운동을 지속했다. 그리고 6·10 만세 운동 이후 침체된 항일독립운동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학생의 힘으로 꺼져가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린 것이다.
▲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학생들의 시위 장면
그리고 정부는 1953년, 당시 학생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학생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한다. 그러나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종신집권을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0월 유신을 선포한다. 그 과정에서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으로 인한 학생들의 정부에 대한 저항이 거세졌고 1973년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 개정을 통해 ‘학생의 날’을 비롯한 각종 기념일을 통폐합한다. 그러나 정부는 1984년 학생의 날을 부활시켰고, 2006년, 학생들의 자율역량과 애국심을 함양하고자 명칭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변경하고 법정기념일로 제정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소외받는 기념일
이렇게 제정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강변역 동서울터미널과 2호선 건대입구역 주변, 온라인 등에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아십니까?”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론적으로 ‘학생의 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있었다. ‘모른다’라는 답변이 총 177명 중 151명으로 약 85%였으며, ‘들어는 봤다’와 ‘잘 알고 있다’는 답변은 각각 17명(9%), 9명(5%)였다. 학생의 날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도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의 배경을 아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알더라도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제정의 취지와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잊혀진 기념일인 것처럼 보였다.
▲ 2호선 건대입구역 주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 학생들이 기억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전국 각지의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기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마다 충남 아산시의 온양용화고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교문맞이 행사를 진행하며. 세종시의 소담고등학교에서는 융합행사를 진행한다. 그 중에서도 의정부시의 광동고등학교에서 수년간 해오고 있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 프로그램은 조금 특별하다. 우선 프로그램의 주체가 학생이다. 프로그램의 기획과 홍보, 진행이 모두 학생회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심지어 상품 구입 같은 부분도 학생회 예산에서 처리한다. 그리고 지난 5일, 광동고등학교 학생회장 김민재 군을 만나 ‘학생독립운동기념일’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알리기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을뿐더러, 알아도 이름만 알고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모습을 보고 역사적으로 학생들이 알아야 할 날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학생회 주도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들었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요?
“우선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인 11월 3일의 일주일 전부터 플랜카드를 걸고 교문 앞에서 학생회가 구호를 외치며 홍보했습니다. 그리고 당일에는 교내 곳곳에 숨긴 쪽지 안의 내용에 대한 정답을 맞히거나, 학생회 학생들이 교내를 돌아다니면서 반을 대상으로 퀴즈를 내서 정답을 맞히면 상품을 수여하기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의 제정 배경과 취지, 그리고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